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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주는 상감이 파탈하고 노시는 쾌활하신 표정 덧글 0 | 조회 34 | 2019-07-18 14:35:06
예지  

숙주는 용안을 우러러보았다. 용안에는 평생을 보지 못하 던 비통한 빛이 떠돌았다.

숙주는 상감이 파탈하고 노시는 쾌활하신 표정과 벼락같이 진노하시는 표정과 엄숙하고 장중하신 표정은 익히 뵈었으 나 이렇게 비통하신 표정을 뵈옵기는 처음이기 때문에 숙주 자신 송구한 마음이 아니 들 수 없었다.

"노산께 대해서 말요."

상감의 비통하신 빛은 분노에 가까운 빛으로 변하였다.

"지극히 슬픈 일로 아오."

숙주도 전신에 힘이 빠지는 듯함을 느꼈다.

숙주의 눈앞에는 어리신 세자로의, 어리신 상감으로의, 어 리신 상왕으로의, 그리고 최후로는 노산군으로 강봉되시어 영월을 향하고 떠나실 때에 동대문 밖에서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숙주가 여쭈올 때에, 눈물이 글썽글썽하신 눈으로 숙주를 바라보시며,

"상감 잘 도와 사직 안보하고, 현릉(顯陵) 수고 잘하고, 중 전───응 인제는 중전이 아니지, 불쌍한 송씨 과히 고생 안 되도록 하오."

하고 부탁하시던 것을 생각하였다.

누가 이것을 열일곱 살밖에 아니 되신 이의 말씀이라고 할 까. 숙주는 노산군이 무슨 원망하는 말씀을 하실까 하여서 마음이 조렸으나 이런 당당한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듣고는 쇠방망이로 머리통을 얻어맞은 듯이 띵하였다.

상감을 잘 도우라, 현릉을 잘 수호하라, 송씨를 과히 고생 안 되도록 하라, 이 말씀은 두고두고 생각할수록 숙주의 가 슴을 아프게 하고 뼈가 저리게 하였다.

숙주가 상감께 노산 부인을 제가 하사하시기를 청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만일 노산 부인 송씨가 홍윤성 같은 위인의 집에 종으로 간다고 하면 그 운명이 어찌 될지 몰랐기 때문 이다.

또 설사 노산 부인을 숙주가 하사를 받는다 하더라도 숙주 개인에 있어서는 큰 우환이 될 것이다.

왜 그런고 하면, 만일 노산 부인을 우대하면 다른 무리들 이 숙주가 노산께 충성을 가졌다고 모함할 것이요, 또 만일 노산 부인을 예사 종으로 대우한다 하면, 숙주가 전왕의 후 비를 천역을 시키고도 염연하다고 공격할 것이다. 이런 줄 을 알면서도 노산 부인을 하사하시기를 청한 데는 숙주의 깊은 고충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상감은 노산 부인을 아무에게도 하사하시지는 아니 하셨다. 역적의 권솔이라는 죄명이 노산 부인을 관비로 아 니할 수는 없게 하더라도 상감은 노산 부인을 두호할 수는 있는 대로 두호하실 결심을 가지셨다. 그래서 전라도 순천 부에 관비로 가게 된 경혜공주의 소생을 기르게 한다는 명 의로 여전히 궁중에 두신 것이었다. 숙주는 상감의 이 고충 을 알고 고맙게 생각하였다.

그런데 지금 창졸간에, "너는 마음이 괴롭지 아니하냐."하 시는 말씀을 듣자오매 숙주는 무엇이라고 대답 할 바를 모른 것이었다.

비록 상감이 숙주를 대신으로, 학자로, 또 뜻을 서로 통하 는 친구로 알아주시는 처지라 하더라도 그래도 군신지분이 란 큰 간격이 있었다. 상감은 정말 노산을 어떻게 카지노사이트 생각하고 계신가 그것을 숙주가 똑바로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런고 하면 임금으로서는 노산을 나라의 죄인으로 아니 여길 수 없는 형편이지마는 개인으로는 또 다른 생각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일찍 성삼문 등을 죽이실 때에 상감은 신하들이 듣는 자리 에서,

"성삼문, 박팽년 등은 금세의 난신이나 후세의 충신이다.

얼마 아니하여서 필시 삼문, 팽년을 죽인 것으로 나를 허물 할 줄을 내가 잘 아노라."

하신 것을 듣고 숙주는 몸이 오싹함을 느꼈었다. 그것은 상감이 실로 범상한 어른이 아니라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속이 트인 임금이시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노산 이하로 원통히 죽은 여러 사람에게 대하여서는 예사 사람들 이상으로 긍휼히 여기시는 카지노사이트 생각을 가지셨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마는 경솔히 그들을 동정하는 말씀도 여쭙기 어려운 일이다. 만일 그 말씀 여쭌 것이 상감의 뜻을 거스른다 하 면 그것은 심각한 결론을 가져오고야 말 카지노 것이다. 숙주는 그 것을 초탈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노산에 대하여서,

"지극히 슬픈 일로 아오."

하고 대답 여쭌 것도 실로 목숨을 내어걸고 한 대답이었 다.

"그럴 것을 범옹은 왜 노산을 죽이자고 주장하였소?"

상감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한 나라에 임금 두 분이 계실 수 없소."

숙주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것은 시역(弑逆)이 아닐까?"

이 말씀에 숙주의 이마에는 땀이 솟았다. 상감이 왜 이러 한 말씀을 하실까. 상감은 가끔 대답하기 어려운 말씀을 신 하에게 물으시고는 신하들이 대답에 궁하여 하는 것을 보시 고 웃으시는 버릇이 계셨다. 숙주도 이런 일을 여러 번 당 하였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그것이 한 해학으로 볼 수가 없었다. 이 말씀이 해학이기에는 그 얼굴이 너무 비통하시 고 또 음성이 너무 떨리셨다.

그렇지마는 무엇이라고 여쭙지 아니할 수는 없었다. 그래 서 숙주는, 제가 하려는 대답쯤은 극히 평범한 것이어서, 도 저히 상감이 바라시는 대답이 되지 못할 줄을 알면서도 이 렇게 여쭈었다.

"임금의 자리에 계신 때에는 시역이 되더라도 신하의 자리 에 내린 뒤에는 주(誅)가 되는가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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